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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鲜不朽医书《东医宝鉴》
朝鲜·许浚等编著
허준(许浚)의 동의보감(东医宝鑑)
허준의 본관은 양천(阳川), 자는 청원(淸源)이고 호는 구암(龟岩)이다. 선조 때 내의(内医)가 되어 왕실의 진료에 공을 세웠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어의(御医)로 왕을 끝까지 호종(扈从)하고 돌아와 1604년 호성공신(扈圣功臣) 3등에 책록되고, 1606년 양평군(阳平君)에 봉해졌다. 후에 대간의 반대로 직위가 취소되고, 1608년 선조가 죽자 치료를 소홀히 했다는 죄로 한때 파직당했다. 1610년(광해군 2) 16년의 연구 끝에 완성한 《동의보감(东医宝鑑)》은 조선 한방의학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18세기에는 일본과 청(淸)나라에서도 간행될 만큼 높이 평가되었으며 지금도 여러 나라에서 번역 출판되고 있다. 저서에 벽역신방<疫神方)》 《신찬벽온방(新纂瘟方)》《언해구급방(谚解救急方)》《언해두창집요(谚解痘疮集要)》《언해태산집요(谚解胎産集要)》《맥결집성(脉诀集成)》《찬도방론맥결집성(纂图方论脉诀集成)》등이 있다.
동의보감>의 편찬 목적
이 책의 편찬 목적은 임진왜란으로 전국토의 대부분이 황폐하여 병자가 쉽게 치료를 받을 수 없는데다가 의서마저 부족하였고, 의원과 의서는 있으나 새로 운 학설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일부 의원들이 처방의 뜻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해 약을 잘못 쓰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선조는 허준 등에게 새로운 의서의 편찬을 명하였다. 이에 허준은 의원으로서 본분을 다하기 위하여 이 책을 편찬하게 되었다.
<동의보감>의 편찬 과정
<동의보감>은 선조29년(1596) 선조가 태의(太医) 허준(许浚)에게 완비된 우리나라 의서를 찬집(撰集)할 것을 명하여, 허준은 이 왕명을 받들어 유의(儒医) 정작(郑澯: 1533∼1603), 태의(太医) 양예수(杨礼寿: 1520경∼1597), 김응탁(金应铎), 이명원(李命源), 정예남(郑礼男) 등과 함께 편찬국을 설치한 후 찬집(撰集)을 시작하여 상당한 진척을 보았으나, 정유재란(丁酉再乱: 1597년)으로 여러 의가(医家)들이 사방으로 흩 어졌기에 편찬 작업이 한때 중단되었다. (참조 <동의보감> 서문) 난(亂)이 끝난 다음 선조가 다시 허준에게 내장방서(内藏方书) 500여권을 내어주어 자료로 하도록 하며 단독으로 편찬을 명하자, 허준은 이에 10여년 에 걸쳐 집필하여 광해군 2년(1610) 8월 6일에 25권25책으로 완성하였다. 그리고 저술을 완료한지 3년 후인 1613년 12월에 내의원에서 완간(完刊)하였고, 그 이듬해 4 월에 오대산과 태백산 사고 등에 내사된다.
허준은 집필기간 동안인 1608년 3월 17일부터 이듬해 11월 22일 광해군의 방환(放还) 명령이 있기까지 유배 생활을 하며 <동의보감> 저술을 지속한다. 당시 허준의 유배지가 어딘가는 실록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허준에 대한 광해군의 총애와 비호가 있었고, 문외(门外) 출송(黜送)이라 한 것을 보아 일단은 도성(한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유배를 보낸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그러나, 간이 최립(1539∼1612)의 <간이집(简易集)>에 수록된 유배가 풀린 허준을 송별 하며 지은 칠언시 "증송동경태의허양평군환조자의주(赠送同庚大医许阳平君还朝自义州)"를 참조해 보면 허준은 문외 출송에서 다시 멀리 의주로 유배되어 갔었음이 확인된다.
<동의보감>의 구성:
이 책은 목록이 上·下卷(제1책∼제2책), 내경편(内景篇)이 권1∼권3(제3책∼제6책), 외경편(外景篇)이 권1∼권4(제7책∼제10책), 잡병편(杂病篇)이 권1∼권11(제11책∼제21책), 탕액편(汤液篇)이 권1∼권3(제22책∼제24책), 침구편(鍼灸篇)이 권1(제25책)로 되어 있다. 즉, 이 책은 내경, 외형, 잡병, 탕액, 침구의 5대 강목(纲目)으로 나눈 후, 각강(各纲)이 류(类)에 따라 항(项)을 예기(例记)하였으며 각항(各项)의 류를 다시 목(目)으로 나누고 각 항목(项目)의 다음에는 그 항에 해당하는 병론(病论)과 방론(方论)을 빠짐없이 채록(採录)하였고, 또 그 출전(出典)을 밝혀 각병증(各病症)에 관한 고금의 치방(治方)을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게 하였고, 곳에 따라서는 속방(俗方)이나 자기 의 경험방을 적기도 하였다.
이 책의 내용은 각 병증의 항목을 주로 증상을 중심으로 하여 열거하며, 병항(病项)에 따르는 치방을 출전과 함께 일일이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많은 여러 가지 의 서들을 참고로 할 시간적인 여유를 가지지 못한 현대의 임상의들이 손쉽게 고금 의방을 볼 수 있는 편의성을 준다. 이렇게 <동의보감>은 1212종의 약에 대한 자료와 4497종의 처방을 수록하고 있 다. 그리고, 탕액편(汤液篇) 3권3책은 향약명(鄕药名)이 한글로 637개가 등재되어 있어 국어연구의 귀중한 자료로도 평가되고 있다.
<동의보감>에는 중국의 후한남북조시대(后汉南北朝时代)로부터 수, 당, 송, 원, 명 에 이르기까지의 83종에 달하는 중요한 방서(方书)들이 거의 인용되었으며, 특히 우 리나라의 방서로는 세종조의 <의방유취(医方类聚)>와 <향약집성방(鄕药集成方)>, 그리고 선조조에 양예수 등이 편저한 <의림촬요(医林撮要)> 등이 채용되어 있다. 따라서 <동의보감> 저술에 모두 86종의 방서를 사용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방서의 사용 이외에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시 내의원에 소속된 의원들의 경험도 참고되었다는
사실이다
.
<동의보감>의 의의:lt;동의보감>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의의를 가지고 있다. 첫째, 과거로부터 내려온 당시 의학의 일부 비현실적인 이론 부분을 배격하고 실용성을 중요시하여 과학적 입장에서 당시 의학의 모든 지식을 정리하였다.
둘째, 우리 국토에서 나오는 향약(鄕药)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그 이용과 보급을 강조하였으며, 이를 위해 향약 중 637개의 이름을 한글로 표기하여 쉽게 이용토록 함으로써 조선의학을 부흥시켰다. 셋째, 86여종이 넘는 많은 국·내외 의서를 참고하여 편찬하였으므로 내용이 풍부하여 시간적 여유가 없는 임상의(临床医)에게 매우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
넷째, 당시 조선의학의 수준을 중국과 일본에 과시하였다.
다섯째, 허준은 조선의학을 하나의 독립된 의학이라는 의미에서 이 책의 이름을 < 동의보감>이라 명명(命名)하였다(허준이 쓴 '집례' 참조). 그는 중국의학을 북의(北医)와 남의(南医)로 나누고 조선 의학을 동의(东医)라 하였는데, 이는 조선에서도 독자적으로 의학을 연구·발전시켜 왔으며 조선 의학이 중국과 대등한 전통과 수준을 지니고 있음을 주체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서명(书名)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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