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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60분을 보고 우리 할배 생각이 나서

글쓴이 :beibian

어제 휴식이구 또 심심해서 KBS추적60분을 보게 됐슴다.

독립용사에 관한 프로가 있어 그걸 클릭해서 보게됐음다

첨엔 그냥 궁금해서 봤는데 보다나니 이미 저세상에 간 우리 할배 생각이 나더군요

내가 유치원다니기전부터 내가 장손이라고 튼튼하고 총명하게 키워야 한다며 나를 억지루 끌구 나가선 스케트도 배워주고 구구법을 암송시키고 일본말을 배워주셨던 우리 할배임다...

일본말은 제대루 모르지만 아직두 기억나는 노래가사가 한구절 떠오름다.

(하룽아 기다).. 근담에 기억이 안남...무슨 뜻인지두 모르겠는데 그냥 하늘이 뭐 어떻다는걸겜다...하늘이 푸르다 던가???

아바이가 생각나는건 우리 할배도 독립투사였기 때문입니다.

나두 독립용사의 후손임을 밝힙니다..

그럼 우리 할배를 계속 말해야겠죠

우리 할배는 중학교까지 한국에서 살았음다...뭐 수원인지 서울인지 하는데서 공부했다더군요

우리 할배 말로는 우리 할배의 동창이자 딱친구이던 조선남자애는 일본놈들이 군대로 내보내서 한번뜨면 다시는 착륙할수 없는 그런 비행기를 몰구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했다더군요

그때가 아마 우리 할배가 16세 그좌우일거에요..정확히는 모름

우리 할배 중학교까지 한국에서 다니고 말로는 기관차 대가리를 붙잡고 중국에 와서 항일을 했다더군요

후에 심양에서 교원질 하며 우리 할매를 만나 결혼하고 연변에 오게 됐슴다...

연변에서 중학교 교원했는데 후에 문화혁명이 일어나서 우파로 몰려 농촌(연변동성진영성)에 똘기워 갔슴다..아마 한국이랑 련관이 돼서 그랬을 겜다.그기서두 투쟁만 받았다더군요

그기서 나두 태여나구 그렇게 살다가 문화혁명이 끝나자 우리 할배는 안도란 곳에 다시 교원으로 분배받고 그기서 살게 됐고 그곳에서 일생을 마쳤습니다.

근데 우리 할배는 문화혁명을 겪어 그런지 자신이 독립투사란 말을 전혀 입밖에 내지 않더군요

우리 할배 성격이 고지식해서 그런지 영 이상함다.특히 문화혁명때 투쟁을 받고 난후 성격이 영 이상하게 변했슴다.

말이 영 적어졌고 간혹가다 하는 말 몇마디두 자식한테두 안하구 손자인 나와 우리 할매한테만 합니다.

우리 할배가 독립투사였단것도 내가 커서 책읽기를 좋아해서 알게됐음다.

우리집이 그때 안도 어느 농촌에 있었는데 우리 할배가 글쎄 자기절루 흙을 발라 창고를 지었단 말임다...

한일을 책과 씨름한 사람이여서 아무리 년세가 있다 하지만 창고를 삐뚤삐둘하게 지었단 말임다.

창고를 지은 원인은 그기다 일생 갖구 다니던 책을 소장하기 위해서 였음다.

어릴때부터 책읽기를 대단히 좋아했던 나인데 그 당시 중국형세를 보면 어린애한테 맞는 책이 정말 적었고 거의 없었음다.

그래서 남몰래 우리 할배 창고에 기어들어가 그기서 아무거나 골라 마구 읽었음다.

뭐 맑스부터 레닌에 이르기까지 어린 나이에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냥 읽는 잼이에 마구 보게 됐음다....

그렇게 읽다가 어느날인가 우리 할배가 독립투사였단걸 몇개 자료를 보고 알게 됐음다...

그래서 물어봤는데 우리 할배는 매우 성나 하더군요

지어 나를 창고에 못가게 하더군요

아마 독립투사였어도 한국에서 온 이유땜에 문화혁명시기 받은 박해를 생각하고 그런거 같슴다.

지금에 와서 자꾸 생각나는데 80년대 언제 월드컵때 일임다.

나는 그때 너무 어려서 월드컵이 뭔지도 몰랐음다.그냥 축구경기이구나 하구 생각했죠

우리 아버지랑 다른 형제들은 축구나 월드컵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음다.

월드컵 하는 그때 어느날 밤중에 내가 깨난적 있어요

깨나보니 우리 할배가 흑백텔레비젼 앞에서 축구를 가만히 보고 있더군요... 한국과 어느 나라가 하는 경기였음다...80년대니까 기억이 잘 안나요

그때는 아무 생각도 없이 자는데 방애를 준다고 투덜거렸고 우리랑 아무 상관없는 한국을 왜 응원하냐...아마 한국도 우리랑 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이여서 우리 할배가 그랬겠구나 하구 생각했는데 이제 와서 보니 우리 할배를 이해할수가 있어요

이렇게 살다가 우리 할배는 91년도에 세상을 떠났어요

우리할배의 시신과 함께 나의 동년시절을 함께 보냈던 그 책들도 재더미로 변했구요

내 인상속에 우리 할배는 성격이 과묵하고 말하길 무척 꺼려해요

근데 한일을 살아도 다른 사람을 방조하면 했지 누구를 해치거나 누구의 도움을 전혀 받을 사람이 아니에요

성격이 너무도 고지식했어요

그때 당시 연변사람들의 말로 분석하면 제노릇 못하는 "머저리"인거죠

나도 그런대로 할배에 대한 인상이 그러했었죠

근데 어제 그 프로를 보면서 자꾸 할배 생각이 나구 우리 할배가 참으로 위대한 사람이였구나 하는 생각이 났어요

난 정말로 한국의 KBS방송사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왜나면 내 인상속에 우리 할배는 괴벽하고 너무도 고지식한 성격땜에 제욕심을 차릴줄 몰라서 항상 주위사람,지어 자식들로부터 이상한 취급을 받아왔기 때문입니다.

난 그 프로를 보기전까지만도 독립용사는 그냥 시대의 수요였고 그러했기에 우리할배도 고향을 떠나서 중국에 왔고 우리 할배가 비판받고 이상하게 변한거는 우리 할배의 불쌍한 운명때문이겠지 하구만 생각했어요

추적60분을 보면서도 그냥 저사람들은 돈많은 한국의 국적을 얻기 위해 그러겠지 하구 생각했는데 엠씨분이 친일파들도 땅을 돌려달라고 하고 돈더미에 앉는데 나라를 위해 자기 일생을 바친 항일투사들이 가난에 허덕이는게 도리에 맞나면서 그러면 누가 또다시 이민족,이나라가 위험에 처했을때 선뜻 나서겠는가 하던 그 말에 저도몰래 ...탄성을 질렀슴다.......

탄성을 질렀다 해서 내가 뭐 한국의 돈이나 그런거에 대해 욕심이 생겨 그런게 아닙니다.

난 보증코 한국국적이나 돈 일전한푼 원하지도 않거니와 나한텐 필요도 없슴다.

왜냐면 난 중국에서 일정하게 자기 기반을 닦았고 괜찮게 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할배는 이미 저세상 사람인데 할배의 과거를 뒤져 제 욕심을 차린다면 할배를 모욕하는 일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그냥 내 속심말을 하고 싶을 뿐입니다.

그말을 듣는 순간 난 우리 할배가 떠올랐으며 내란 사람이 한국인들이 아직도 잊지 않고있는 독립투사의 후손이며 우리 할배의 손자여서 참으로 뿌듯한 일이구 우리 할배가 위대하게 느껴졌음다.

다시말해 내가 우리 할배한테서 받은 "제노릇못하는 머저리"의 인상을 말끔히 가셔주고 나로하여금 독립투사의 후대여서 당당하고 떳떳하다는 긍지감을 가지게 했기 때문입니다.

난 우리 할배가 참으로 잊을수 없슴다...걸음마를 타서부터 유치원다니기전부터 스케트에 일어에 붓글씨에 구구법을 배워주던 우리 할배입니다.

하지만 크면서 주위에서 받은 느낌으로 할배에 대한 인식은 차츰 변했던것임다.

나는 KBS에 감사하게 생각됨다.

추적60분은 내가 할배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아주고 나로 하여금 이미 저세상 사람이 된 우리 할배에 대해 다시금 존중의 마음을 갖게 하고 할배의 후손이여서 떳떳한것임을 알려줬기 때문입니다.

고국의 KBS에 다시한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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