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长鼓的结构
鼓身圆形,木制,蒙皮,中间细实,两端粗空,可发两种不同的音色。长鼓鼓身圆筒形,长70厘米左右,由一块木料(或多块木料拼合)车旋而成,两端粗空,中间细实,形成两个共鸣腔。两端鼓面直径大小不一,蒙皮厚薄有别。一般多用羊皮、马皮、牛皮或驴皮,用绳索绷紧并可调节鼓皮的张紧度,因而每个长鼓可以发出两种不同的音色,粗端发出柔和深沉的低音;细端发出清脆明亮的高音,还能根据演奏的需要来定音。演奏长鼓时,右手执细竹条敲击,左手拍打。有两种演奏形式: 一种是将较小的长鼓横挂在胸前边舞边奏,如朝鲜族著名的《长鼓舞》,它既是舞蹈的伴奏乐器,又是舞蹈的道具;另一种是将稍大的长鼓置于木架上,摆在演奏者面前专作为乐器演奏,为声乐伴奏(如伽倻琴弹唱)或参加器乐合奏,常用来表现轻快、欢乐的情绪。
长鼓在熟练的演奏者敲击下,两个不同的音响参插交错,两种不同的音色忽隐忽现、时轻时重、抑扬顿挫,音色分外清丽鲜明。它以独特而丰富的音乐语言,表达出复杂而细腻的思想感情,具有鲜明的朝鲜族风格和浓厚的地方色彩。
장고(杖鼓Changku-Janggu)---삼국시대의 요고는 모두 무릎 위에 놓고 칠 정도로 작았는데, 고려 이후 부터 크기가 커졌다. 이는 거문고와 가야금, 비파 또는 대금과 같은 악기들의 음색과 조화시키기 위한 것으로 추측된다



长鼓舞
朝鲜族民间舞蹈, 历史悠久。朝鲜族长鼓舞,多为女子表演。舞蹈时由舞者将长鼓挎身前,左手拍鼓面,右手持一细竹鼓鞭敲击鼓面,边击边舞,十分优美。
长鼓舞素有朝鲜族舞坛上的一颗明珠之美称,历来备受朝鲜族人民的珍爱。长鼓舞具有上千年的历史,终以其典雅飘逸的舞姿驰名中外。长鼓舞的表演,以柔软的扛手、伸肩、鹊雀步等动作为主,以肩挎长鼓,右手持鼓鞭,边跳边敲鼓的形式表演,身、鼓、神融为一体,高度协调统一。舞蹈以深情的“古格里”(朝鲜族音乐里的一种节奏名称)慢拍音乐开始,经过几次力度很强的旋转后戛然而止。舞蹈有形式有独舞、双人舞和群舞等多种。建国以后,长鼓舞久经朝鲜族舞蹈家们的精心改编,增进了新的时代气息和民族特色,使这一艺术形式日臻完善。
朝鲜族长鼓-----打击乐器。亦称“杖鼓”。流行于东北三省的朝鲜族地区。长约70厘米,鼓身木质,呈圆筒形,中段细实,两端粗空,鼓面蒙皮,以铁圈为框,系皮条或绳索,可以调整鼓的音高。演奏时,挂在胸前或放在木架上,右手执细竹条敲击,左手敲击另一面。两手节奏交错,变化多端。常用于伴奏歌舞或用于乐器合奏。


伽倻琴
kayagum--kayago
朝鲜族的民族乐器向来以清新、流畅、婉转、轻快的旋律和丰富多彩的节奏变换闻名中外,在我国民族乐坛中独树一帜。
朝鲜族传统民族乐器,保留下来的为数不多,但富有民族民间特色,古色古香。这些民族乐器,以木管乐器为主,以弦乐器为辅。流传至今的弦乐器,只有伽椰琴和奚琴两种。
伽椰琴,为朝鲜族传统弦乐器之首,是民族色彩很浓的弹拨乐器。它的形状近似汉族民乐器古筝。据《三国史记》记载,伽娜琴“法中国乐部筝而为之”,“伽椰国嘉实王,见唐之乐器而造之”。伽榔琴在演奏时,一端着地,一端放于腿上,右手弹,左手弄,表演姿态稳雅别致。枷椰琴由共鸣箱、琴弦、琴码三部分组成。共鸣箱长150厘米、宽25厘米、中间厚5厘米。质料分别用梧桐树板和桦木板制作。琴线用蚕丝制作。共13根弦,琴弦的两头各固定在龙头(琴头)和琴尾,在琴头有弦枕,13根琴弦用码子支柱,琴头可以左右移动,调节音阶。伽椰琴富有表演力,是善于表达民族柔和情感的民间乐器,因此,枷椰琴弹唱是各族人民喜闻乐见的一种表演形式。
拨奏弦鸣乐器。流行于朝鲜和中国吉林、辽宁、黑龙江、内蒙古、河北等地的朝鲜族居住区。相传系公元6世纪朝鲜伽倻国嘉实王仿中国筝所制。其形似筝,有12、13或15根丝弦。弦下设柱,可移动调音。五声音阶定弦。原有雅乐伽倻琴和俗乐伽倻琴之分,前者比后者宽、长。演奏时,琴身较大者置于桌上;琴身较小者,左端置于琴架,右端置于奏者右腿。演奏方法与筝相近。常用于女声弹唱和独奏。中国朝鲜族的伽倻琴,于19世纪末由朝鲜传入。20世纪60年代后出现了改革伽倻琴,扩大音箱,增加弦数,并按七声音阶定弦。
가야금 (伽倻琴-Kayagum)--------민족 고유의 현악기의 하나. 가얏고라고도 한다. 거문고가 다소 고답적(高踏的)인 데 비하여 다분히 서민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으며 주법도 한결 쉽다. 가야금의 기원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6세기에 가야국(伽倻國)의 가실왕(嘉悉王)이 당나라의 악기 쟁(箏)을 보고 만들었으며, 악사 우륵(于勒)으로 하여금 12곡을 짓게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의 《삼국지(三國志)》 중 <위지(魏志)> 동이전(東夷傳)에 삼한(三韓)시대에 이미 한국 고유의 현악기가 있었다는 기록이 보이고, 1975년 경주 황남동에서 발굴된 토기 목항아리[長頸壺]에 새겨진 가야금 주악도(奏樂圖) 등으로 보아 가야금은 삼한시대부터 사용된 민족 고유 악기가 가실왕 때 더욱 발전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가야가 망하게 되자 우륵은 가야금을 가지고 신라로 투항하였으며, 신라의 진흥왕(眞興王)은 그를 국원(國原;지금의 충주)에 두고 계고(階古)·법지(法知)·만덕(萬德)의 3명을 그의 제자로 삼아 가야의 음악을 계승케 하였다. 이들은 스승이 가르쳐 준 12곡의 음악이 번차음(繁且淫)하다 하여 이를 5곡으로 추렸는데, 그 후 이 5곡은 신라의 대악(大樂)으로 채택되었으며, 가야금은 신라에 널리 퍼져 노래와 춤의 반주악기로 사용되었다. 가야금의 형태는 오동나무로 만든 공명판 위에 명주실로 꼰 12개의 줄을 세로로 걸고, 줄마다 기러기발을 세워 버티게 하였다. 종류는 법금(法琴)가야금과 산조(散調)가야금의 2가지가 있는데, 전자는 아악(雅樂) 또는 정악(正樂)에서 사용되는 전통적인 가야금이며 후자는 민속악 특히 산조에서 사용되는 것으로서 19세기 말경 빠르고 다양한 산조음악의 출현과 함께 만들어져 널리 보급되었다. 가야금의 연주법은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서 가야금의 상단을 오른쪽 무릎 위에 얹고 하단은 비스듬히 밖으로 나가게 놓는다. 오른손의 첫째·둘째·셋째손가락으로 줄을 뜯거나 퉁기면서, 왼손은 둘째·셋째손가락을 모아서 그 끝으로 기러기발 바깥쪽 부분을 눌렀다 놓았다 하며 소리를 낸다. 음색이 맑고 우아하여 아악과 민속악에 널리 사용된다.